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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던인생

닭과소 2011. 11. 22. 13:03


    반 거짓말 서울가서 돈번다고 3년동안 죽을 고생만 하다가 마누라 손에 끌려 내려왔지요. 고향에 와서 별로 할일 없이 빈둥거릴 때, 아는 선배님의 추천으로 고향 여학교 서무과(행정실)에 한 10여년간 근무를 했답니다. 처음 들어가니 봉급 90,000원을 주더군요 33살 늙은 신출내기라 내근보담 외근 심부름을 많이 다녔지요. 그날도 학교 용품 구입차 서울로 출장 가는 길에,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 빵차라고 새벽 5시 청량리 행 완행열차가 있었읍니다, 객차 칸마다 난로가 있고, 조개탄을 땠지요 난로 주위가 겨울에는 특석이였지만 그자리는 약삭빠른 사람들의 차지고 난 늘 객석 맨끝에 앉아 다니곤 했답니다 객석은 새벽 장을 보러가는 장사꾼으로 북새통응 이루고 주고받는 서민들의 고달픈 애환들이 지루하지 않었고, 형형색색의 사람들의 얼굴을 훔처볼 때 마다 나는 속으로 비식 웃곤 했다오. .............. 내 앞 좌석에는 한 50은 넘어보이는 행색이 허름한 아저씨 한분이 막과자를 안주삼아 소주를 들고 있고. 그 옆좌석에는 한 5,6살 되어보이는 꼬질 꼬질한 사내 아이가 미우리 만치 개굿하게 장난을 치고있었지요 앞에 아저씨가 혼자 들기 민망했던지, 소주잔을 건내며 한잔 하겠느냐고 말을 건내드만요 나는 술을 못 먹는다고 거절을 했지요 .............. 나도 가만이 있기가 서먹거려 말을 건냈지요. ‘어디 까지 가세요?’ 공연히 물어봤다고, 한참 후에야 후해를 했다오 그 아저씨는 취기가 오른듯 연실 한숨을 토하곤 이야기를 시작하는디, 5년전에 마누라가 얘기 지우려고 돌파리 침쟁이에게 침을 잘못맞어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5년동안 입원 해 있고, 주말 마다 막내를 데리고 병원에 온다고, 자기는 사께야마(광산 채탄부:굴 맨 앞에서 탄캐는 사람) 인데 80넘은 노모가 계시고 아이들은 모두 5명이고 이놈은 50둥이라고 하두만요. 다시 소주 한 잔을 마시며, 집도 다 팔어 병원비에 쓰고, 회사 동료들의 모금도 여러차례, 봉급도 1년치나 가불해 쓰고, 병원비는 병원비 대로 밀려 독촉을 받고, 죽지못 해......... 취기 오른 눈 언저리에 눈물이 비치두만, 이거, 완전이 오발탄 이두만요... 「아저씨 저도 한잔 주세요」 연거퍼 두잔을 얻어 마시곤. 공연히 물어봤구나, 하고 또 후회를 했다오. 이런 인생도 있구나, ................. 얼마나 지났을까? ................. 나는 코밑이 새카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럴 때 나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하나, 얼마나 골돌했는지 모른다오 코밑 새카만 아이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으며, ‘고놈 영특하게 생겼네, 빈 소리를 했지요 그리고 어린아이의 손바닥을 폈지 실은.......‘제가 관상과 수상을 좀 보는데요’ ‘이놈이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좀 고생이 되시드라도 이놈만 잘 키우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 같아요 .................. (아주 거짓은 아니고 전에 취미로 좀 했거든요) 아저씨의 그늘진 얼굴이 금새 환하게 밝아 오드군요. ‘아 그래요, 자신이 생겼다. 반은 소설을 쓰듯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고.... 나는 호기를 놓치지 않고...... 얼마나 말을 쏟았는지.... 열차가 청량리 홈에 도착 해서야 반 거짓말이 끝이 났지요, 아저씨의 얼굴이 어찌나 밝아보이던지...... 내가 산에서 방금 내려온 도사로 알두만요 열차에서 내려 개찰구 까지 나오면서 ‘선생님 고맙습니다.고맙습니다.’라고 몇번이나 인사를 하던지.......... 병원으로 향하는 아저씨의 걸음이 가벼웠을까? 그때가 내 나이 33살, 27.8년은 족히 됐겠군요 그 코밑이 새카만 어린이도 지금은 34.5정도, 건장한 청년으로 커 있겠지요? 그 아저씨는 살아계실까? 그 부인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? 그 거짓말들이 죄가 될까?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 거짓말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.......... ................. <솜털이 생각>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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